1. 다카포(Da Capo), 처음으로 돌아가라.
악보에 다카포(D.C.)가 적혀 있으면 연주자는 곡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지난 14일 트럼프 대통령과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전자 서명한 종전 양해각서(MOU)를 보고 있으면, 이 외교가 정확히 다카포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서명은 했으나 호르무즈 통항료를 두고 미국과 이란은 “받지 않는다”, “받을 권리가 있다”며 하루 만에 엇갈렸고, 동결자산 해제와 3000억 달러 재건기금의 성격을 두고도 양측은 서로 다른 마디를 연주하고 있다. 14개 조항으로 늘어난 악보의 길이는 늘었지만, 정작 곡은 한 소절도 새로 나아가지 못한 채 처음 자리로 돌아가는 도돌이표만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2. 為學日益, 為道日損 — 발표는 쌓이는데 길은 줄어든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48장에서 “爲學日益, 爲道日損(학문을 하면 날로 더해지고, 도를 닦으면 날로 덜어진다)”이라 했다. 이번 협상을 지켜보면 이 구절이 거꾸로 뒤집혀 적용되는 듯하다. 발표(學)는 날마다 늘어난다 — MOU 체결, 전문 공개, 후속 협상 일정, 재건기금 규모까지 매일 새로운 문구가 더해진다. 그러나 정작 협상의 본질(道), 즉 핵물질 처리와 통항 주권이라는 실제 쟁점은 날마다 줄어들기는커녕 60일 뒤로, 또 그 이후로 계속 유예될 뿐이다. 더해지는 것은 말(言)이고, 줄어들어야 할 불확실성(損)은 오히려 쌓여만 간다. 이것이야말로 도(道) 없는 학(學)의 전형이다.
3. 名實相符 — 이름과 실질의 괴리
한비자(韓非子)는 형명참동(刑名參同), 즉 이름(名)과 실질(實)이 부합하는지를 군주가 끊임없이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이 MOU의 이름은 “종전(終戰)”이다. 그러나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전쟁의 “종식”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다. 호르무즈 무료 통항은 60일 한정이고, 핵물질 처리는 “희석”이라는 모호한 표현 뒤로 미뤄졌으며, 미국 관리들조차 “문구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이름은 평화이되 실질은 휴지(休止) — 음악으로 치면 종지부(終止符)가 아니라 잠시 멈추는 페르마타(fermata)에 불과하다. 명실(名實)이 어긋난 합의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한비자가 거듭 경고한 바다.
4. 청구서는 누구 앞으로 돌아오는가
이 도돌이표가 가장 위험한 지점은, 반복되는 동안 청구서만은 차곡차곡 누군가의 우편함에 쌓인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국이지만, 3000억 달러 재건기금의 실제 재원은 걸프 국가와 한국·일본을 비롯한 동맹 기업의 투자로 채워지고 있다. “미국 돈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트럼프의 말은 곧 “누군가의 돈은 들어간다”는 말과 같다. 게다가 호르무즈 통항료 유예가 60일로 못박힌 이상, 그 시한이 지나면 통항국 전체가 또 다른 청구서를 받아들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전쟁의 책임은 한 나라에 있는데, 그 비용의 박자만은 만국에 고르게 분배되는 기이한 협주곡이다.
5. 天下莫柔弱於水 — 흩어진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노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으나,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을 이길 것이 없다).” 개별 국가는 미국의 요구 앞에서 한 방울의 물처럼 약하다. 거절은 곧 안보·통상 관계의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각국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물방울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위도 뚫는 힘이 되듯, “투자와 배상을 분리하라”, “재건 비용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라”는 요구를 각국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 목소리로 낼 때 비로소 굳고 강한 일방적 청구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단호함은 한 나라의 음색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합을 맞춘 화음(和音)에서 나온다.
6. 도돌이표를 끝내는 법
음악에서 도돌이표는 영원히 반복되지 않는다. 악보 어딘가에는 반드시 “Fine”, 끝맺는 표시가 있다. 지금의 미·이란 MOU에 그 표시가 있다면, 그것은 호르무즈의 항구적 자유 통항과 핵물질 처리의 검증 가능한 합의, 그리고 재건 비용의 투명한 책임 소재 — 이 세 가지가 한 무대 위에서 동시에 연주될 때뿐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같은 마디를 도는 협상의 반주에 맞춰, 청구서만 새로 받아 드는 관객의 자리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한다는데 안 되는 것은 없다지만, 한다는 의지가 누구의 몫인지조차 불분명한 도돌이표는 결국 누구도 끝내지 못한다.
-萬頭의 객석, 권두안J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