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땅이 갈라지고, 이란의 하늘이 불탔다'
黑天來雲 來雨落花
落花不終 又新之春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오자 꽃이 떨어지는구나.
떨어진 꽃은 끝이 아니다. 또 봄이 오면 새가지가 돋는다.
죽음에는 네 가지 얼굴이 있다.
타인의 손에 죽는 것, 자신의 손으로 죽는 것, 하늘의 뜻대로 살다가 때가 되어 눈을 감는 것, 그리고 —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불타는 순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것.
나는 오늘, 네 번째 얼굴 앞에 서 있다.
6월 24일,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그날은 국경일이었다. 사람들은 직장이 아닌 집에 있었다. 가족과 함께, 밥상 앞에, 혹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평범한 오후에 규모 7.2, 이어서 7.5의 연쇄 강진이 126년 만에 이 땅을 덮쳤다. 사흘이 지난 지금, 사망자는 1,430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6만 8,900명에 달한다. 구조의 골든타임 72시간이 끝나가는 동안, 장비도 인력도 부족해 시민들은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다.
그들은 몰랐다. 그 아침, 신발 끈을 묶으면서, 커피 한 잔을 내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갑자기 끝날 줄을.
같은 시간, 이란의 하늘 아래서도 사람들이 죽었다. 전쟁은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다. 미사일은 묻지 않는다 — 당신은 준비가 되었느냐고. 시장을 걷던 사람, 잠들어 있던 아이, 환자를 돌보던 의사. 그들 역시 몰랐다. 그 순간이 마지막인 줄을.

여기서 나는 오래된 물음 앞에 다시 선다.
타살은 타인이 신의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자살은 자신이 그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둘 다 인간의 손이 개입했다. 그 죄의 무게가 다를지언정, 구조는 같다 — 신이 정한 종점을 인간이 먼저 당겨버린 것.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의 그 죽음들은 무엇인가.
땅은 스스로 갈라졌다. 인간의 손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의 뜻이었다고 말하기엔, 그 숫자가 너무 많고, 그 얼굴들이 너무 평범하다. 밥을 먹다가, 아이를 안다가, 국경일의 햇살 아래 웃다가 — 그렇게 간 사람들을 향해 "그것이 천명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이다.
나는 답을 모른다.
신정론의 오랜 물음 — 선한 신이 전능하다면, 왜 무고한 자가 떼로 죽는가 — 에 대해 어떤 철학자도, 어떤 종교도 완전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욥에게도 신은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다만 폭풍 속에서 되물었을 뿐이다.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다.
잔해 속에 깔린 노인을 발견한 구조대원은 말했다 — "지붕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무너지더라도 내가 여기 끝까지 함께 있겠다"고.
신의 시간표를 알 수 없는 인간이, 그 불확실한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 그것은 아마도 이 것이다.
함께 있는 것. 끝까지.
地不生無名之草 天不生無祿之人
땅이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듯, 하늘은 의미 없는 생명을 내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잔해 속 그 이름들도, 이란의 폐허 속 그 얼굴들도 — 모두 하늘이 뜻을 두어 이 땅에 내보낸 존재들이었다. 타살도 자살도, 전쟁도 지진도 — 그 죽음의 방식이 아무리 억울하고 갑작스러워도, 그 삶은 처음부터 의미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는, 그 의미를 기억하는 것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야 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 내게 주어진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 비로소 편안함이 온다.
오늘, 베네수엘라의 잔해 속에서, 이란의 폐허 속에서 — 영영 그 편안함을 얻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모든 영혼의 명복을 빈다.
梅雨
黑天來雲 來雨落花
落花不終 又新之春
-萬頭-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오자 꽃이 떨어지는구나.
떨어진 꽃은 끝이 아니다. 또 봄이 오면 새가지가 돋는다.
-萬頭의 객석, 권두안J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