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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의 인문학 이야기『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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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 흐르는 물] 물은 막을수록 길을 찾고, 해는 붙들수록 빨리 진다.

작성자 萬頭권두안
작성일 26-05-28 20:08 | 495 | 0

본문


아편전쟁에서 이란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

한 제국이 무너지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칼에 베여 쓰러지는 것과, 피를 빨려 말라 죽는 것이다. 19세기의 청나라는 후자였다. 그리고 21세기의 어느 거대한 권력도, 지금 같은 길의 입구에 서 있다. 이 글은 200년에 걸친 하나의 이야기다. 실물(實物)과 종이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가 규칙을 쥐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一  은(銀)이 빠져나간 자리 — 아편전쟁

영국은 청나라의 차(茶)와 비단, 도자기를 사기 위해 막대한 은을 지불했다. 그러나 청은 영국의 물건에 관심이 없었다. 건륭제가 매카트니 사절을 돌려보낸 일화가 그 오만을 상징한다. 무역은 일방적이었고, 은은 동(東)으로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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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영국이 꺼내 든 상품이 인도산 아편이었다.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아편을 밀어 넣자, 이번에는 은이 거꾸로 서(西)로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아야 한다. 청은 아편을 방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막으려 했다. 도광제는 임칙서를 광저우로 보내 아편 2만여 상자를 압수해 불태웠고, 바로 그 단속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막지 못했는가. 금지령은 베이징에 있었으나, 집행은 광저우의 부패가 삼켰다. 세관과 행상(行商), 관리들이 밀수의 뇌물 사슬에 묶여 있었다. 한비자가 말한 「법불아귀(法不阿貴)」, 곧 법이 위에서만 외쳐지고 아래에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법은 있었으되 술(術)과 세(勢)가 없었다.

아편전쟁이 끝난 자리에 무엇이 세워졌는가. 은행이었다. 1865년 홍콩에서 문을 연 HSBC(The 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 그 이름의 「홍콩·상하이」가 곧 영국이 중국을 빨아들이던 두 개의 빨대였다. 무력으로 문을 연 뒤, 그 통로에 자본의 혈관을 깐 것이다. 실물(은)을 빼내고, 그 자리에 종이(은행권·차관·채권)를 쥐여주는 것 — 근대 금융 제국주의의 문법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칼은 한 번 베면 그만이지만, 종이는 매일 베어도 피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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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돈줄이 갈아탄 배 — 메이지유신

같은 시기, 바다 건너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청이 자본을 빼앗겨 무너졌다면, 일본은 자본이 새 권력의 손을 잡아 일어섰다. 그 갈림길의 주인공이 미쓰이(三井) 가문이다.

미쓰이는 본래 도쿠가와 막부의 어용상인이었다. 환전상(両替店)으로 막부의 공금을 굴리며 성장했다. 그런데 막부 말기, 재정이 바닥난 막부는 미쓰이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조슈 정벌의 군비를 댄다는 명목으로, 1864년부터 단 3년 사이에 부과한 어용금(御用金)이 합계 266만 냥에 달했다. 재산 몰수까지 위협했다. 막부는 제 손으로 제 돈줄의 목을 조른 셈이다.

미쓰이의 선택은 냉정했다. 가라앉는 배에서 떠오르는 배로 갈아탔다. 신정부군이 에도로 진군할 때, 미쓰이는 군자금과 군량미를 댔다. 미쓰이·오노·시마다의 환전방 3가(為替方三家)는 신정부의 출납을 떠맡았다. 메이지유신은 흔히 이념의 혁명으로 그려지지만, 그 밑바닥에는 「쩐(錢)의 향배가 결정한 승부」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도 「실물과 종이」의 문법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신정부 역시 돈이 없어 1868년 태정관찰(太政官札)이라는 지폐를 찍었으나, 권위가 약해 신용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 종이에 피를 돌게 한 것은 결국 미쓰이 같은 상인의 실물 자본, 곧 은(銀)이었다. 종이를 발행한 것은 천황의 정부였지만, 그 종이를 떠받친 것은 상인의 금고였다.
그리고 그 돈줄은 지금도 흐른다. 

도쿠가와의 공금을 굴리던 그 환전상은 1876년 일본 최초의 민간은행 미쓰이은행으로, 다시 사쿠라은행을 거쳐, 2001년 오늘날의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으로 이어졌다. 일본 3대 메가뱅크의 하나다.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것은 결국 「실물 자본이 누구의 손을 잡았는가」였다. 청은 자본이 빠져나가 무너졌고, 일본은 자본이 새 권력의 손을 잡아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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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종이로 석유를 산다 — 페트로달러와 이란

20세기, 무대는 대서양 건너로 옮겨간다. 1971년 닉슨이 금태환을 정지시키면서 달러는 금이라는 실물의 닻을 끊고 순수한 종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종이는 어떻게 가치를 유지했는가. 답은 석유였다. 산유국이 석유를 오직 달러로만 결제하게 함으로써, 세계는 가장 절실한 실물을 사기 위해 반드시 달러라는 종이를 쥐어야 했다. 이것이 페트로 달러 체제다.

청의 은이 빠져나간 자리를 종이가 채웠듯, 이번엔 산유국의 석유가 빠져나간 자리를 달러가 채우고, 그 달러는 다시 미국 국채 — 또 하나의 종이 — 로 환류했다. 200년 전의 문법이 규모만 키워 되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모든 체제는 균열에서 시작해 붕괴로 향한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2000년 석유를 유로로 받겠다 한 일, 그 뒤의 운명.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향한 압박. 표면의 명분은 핵과 인권과 지역 패권이지만, 그 밑을 흐르는 한 줄기는 분명하다. 달러망에서 벗어나려는 자에 대한 응징이다.

다만 여기서 인과를 직선으로 못 박는 것은 위험하다. 더 정확한 그림은 순환이다. 제재로 달러망에서 밀려난 나라들이 살기 위해 비(非)달러 결제로 옮겨가고, 그 이동이 다시 탈달러를 가속한다. 푸틴의 말이 이 역설을 압축한다. 「우리는 달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달러를 쓰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제재라는 칼이, 오히려 상대를 종이 밖으로 밀어내 새 종이를 만들게 한 것이다.

이란이 버티는 힘은 지정학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세계 에너지의 목줄을 쥐고, 비대칭 전력으로 강대국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것은 중국의 저금(貯金)과 러시아의 자금·군사력이다. 다만 이 동맹을 한 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실질적 중심축은 위안이며, 러시아조차 인도와의 무역에서 루피 대신 위안을 선호한다. 달러 패권을 벗어나려다 위안 패권으로 갈아타는 것 아니냐는 긴장이, 이 블록의 안쪽에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중국의 저금」이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축적된 달러 자본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며 실물(공산품)을 내주고, 그 대가로 받아 쌓은 종이 — 곧 달러다. 19세기의 청이 은을 빼앗기던 그 자리에서, 21세기의 중국은 거꾸로 실물을 내주고 종이를 거대하게 쌓아 올렸다. 그리고 바로 그 축적된 달러로 이란의 석유를 사주고, 위안 결제망을 깔고, 일대일로의 차관을 놓는다. 적이 내게 쥐여준 종이로, 적의 종이 질서를 태우는 것이다.

여기에 이 시대의 가장 깊은 역설이 있다. 처음에 미국은 종이 한 장을 내주고 세계의 실물을 거두어들였다. 강탈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일방적인 거래였다. 그러나 그 종이는 쌓였다. 한 장의 종이는 새털처럼 가볍다. 흩날리고, 줍지 않으며, 무게가 없다. 그러나 새털도 수억 장이 모여 하나의 구조에 단단히 박히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깃털이 아니라 날개가 된다. 그리고 날개를 단 것은 더 이상 미국이 아니다. 미국이 풀어낸 달러가 베이징의 금고에 쌓여 하나의 날개로 엮이는 순간, 그 새털은 미국의 숨통을 겨누는 무기로 변한다. 가볍게 내준 종이가, 무겁게 돌아와 목을 조이는 것이다.

새털은 흩날릴 때 무게가 없으나, 날개로 엮이는 순간 하늘을 가른다. 천하의 이(利)가 한 곳에서 빠져나갈 때, 그것을 막으려 휘두른 칼이 오히려 이의 물길을 새로 텄다.

四  지는 해는 어제보다 빨리 진다 — 숫자가 말하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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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더 이상 예언이 아니라 통계다. 달러의 세계 외환보유 비중은 2025년 3분기 56.9%로, 1995년 이래 처음으로 57% 아래로 내려앉았다. 2000년의 71%에서 꾸준히 깎여 내려온 끝의 자리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유로(약 20%)와 금, 그리고 위안이 조금씩 나누어 메우고 있다. 결정적으로 러시아는 이미 중국·인도와의 무역 가운데 90~95%를 자국 통화 — 루블과 위안, 루피 — 로 주고받는다. 제재로 달러망에서 쫓겨난 나라가,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종이를 갈아탄 것이다.

페트로달러의 심장에도 금이 가고 있다. 중국은 2013년 이래 사우디 석유의 최대 고객으로, 사우디 원유 수출의 약 22%를 사들인다. 그리고 시진핑은 상하이 석유천연가스거래소를 통한 위안 결제를 본격 가동하겠다 공언했고, 2023년 중국과 사우디는 70억 달러 규모의 위안-리얄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아직 위안 석유 결제의 정확한 비중을 공개하는 통계는 없으나, 그 「구조」가 이미 깔렸다는 사실 자체가 신호다. 결제의 혈관도 새로 깔린다. 중국의 CIPS는 2024년 한 해에 175조 위안, 약 24조 5천억 달러 상당의 위안화 거래를 처리했다 — 4년 전의 세 배가 넘는 규모다. 여기에 금 40%와 회원국 통화 60%로 뒷받침되는 「브릭스 유닛(BRICS Unit)」 구상이 더해진다. SWIFT라는 미국의 종이 결제망에 맞서는 별도의 동맥이, 추상이 아니라 인프라로 깔리고 있는 것이다.

지는 해의 속도는, 어제보다 오늘 더 빠르다.


五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재편되는가

그렇다면 해가 진 자리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성급한 답은 「달러가 무너지고 위안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결을 보아 온 우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세 가지 시나리오를 동시에 펼쳐 두는 것이 정직하다.

첫째, 다극(多極) 통화 질서. 가장 유력한 그림이다. 달러는 무너지지 않되 독점은 끝난다. 달러·유로·위안이 권역별로 분할 통용되고, 무역은 양자 간 자국 통화로 결제되며, 금과 원자재가 다시 가치의 닻으로 돌아온다. 하나의 기축이 아니라 여러 개의 축이 균형을 다투는 세계다. 다만 인도가 「달러가 세계 경제 안정의 원천」이라며 발을 빼듯, 이 다극 질서는 결코 한 몸의 동맹이 아니다.

둘째, 위안 중심의 신(新)조공 질서. 탈달러가 곧 탈패권은 아니다. 미국의 종이에서 벗어난 나라들이 베이징의 종이 아래로 들어가는 길이다. CIPS와 디지털 위안이 SWIFT를 대체하고, 일대일로의 차관이 19세기 영국의 차관처럼 담보(항만·철도·자원)를 잡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해방이 아니라, 빨대를 바꿔 꽂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실물을 빼내고 종이를 준다」는 그 문법의 발행자만 워싱턴에서 베이징으로 바뀌는 것이다.

셋째, 균열과 진영화. 최악의 그림이다. 결제망이 둘로 쪼개지면 무역도, 기술도, 동맹도 둘로 갈라진다. 호르무즈와 타이완과 남중국해가 그 단층선의 화약고가 된다. 종이전쟁이 끝내 쇠(鐵)의 전쟁으로 번지는 길이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미래다.

이 세 길 중 어디로 갈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들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읽는 눈은 새 이론이 아니라 오래된 지혜에 있다.

跋  맺으며 — 오래된 물의 지혜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고. 물은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되, 결국 바위를 뚫는다. 부(富)도 그러하다. 막으면 길을 찾고, 가두면 새어 나간다. 영국이 청의 은을 가둘 수 없었고, 막부가 미쓰이의 자본을 가둘 수 없었으며, 지금 미국이 세계의 이(利)를 달러 안에만 가둘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비자라면 이렇게 보았으리라. 천하의 향배는 명분(名)이 아니라 이(利)가 어디로 흐르는가에 달렸다고. 그리고 그 이를 강제로 막는 칼은, 매번 제가 벤 자리에서 새로운 물길을 연다고. 종이를 가볍게 여겨 함부로 내준 자는, 그 종이가 쌓여 날개가 되고 무기가 되는 날을 끝내 보게 되리라고.
물은 막을수록 길을 찾고, 해는 붙들수록 빨리 진다. 지는 해를 붙들려는 손이 클수록, 그 그림자는 더 빠르게 동쪽으로 길어진다.

우리는 지금, 한 시대의 황혼과 다음 시대의 여명이 겹치는 박명(薄明)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 빛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200년 전 광저우의 부두에서 빠져나가던 은을 기억해야 한다. 실물을 가진 자가 약자가 되고, 종이를 찍는 자가 강자가 되는 그 역전의 순간을. 역사는 반복하지 않으나, 운(韻)을 밟는다.

“의미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미학으로, 미학에서 소통으로”

-萬頭의 객석, 권두안 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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