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계시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흘리신 땀방울과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제 곁에 계셔주세요.
아버지의 아버지;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우리도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란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는 존재다. 달다 쓰다, 좋다 싫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울음도 소리 없이 삼키고, 웃음도 헛헛하게 웃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쌀과 연탄을 사 들고 가야 한다는 책무 하나로,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하고 멸시를 당해도 고개를 숙이고 치욕을 견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보는 것은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라 손이다. 신문지에 둘둘 말린 고등어 한 마리면 운이 좋은 날이다. 뒷주머니에 넣어 온 소주를 꺼내 한 잔을 따라 이내 마신다. 먼 곳을 응시하며 견뎌낸 하루를 되짚는다. 아이들이 잠들고, 구석에서 구멍 난 양말을 꿰매는 아내가 몹시 안쓰럽다. 그러나 말을 아끼고 돌아눕는다.
아버지는 늘 아내와 자식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아붓는다. 소주병이 제 몸을 기울여 잔을 채우듯 따라지는 존재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제 몸을 다 비우면 그것으로 할 일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빈 소주병처럼 쓰레기장이나 어느 마당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일지도 모른다.
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작가의 노트]
제 몸을 남김없이 비워 잔을 채우는 소주병처럼,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살아온 모든 아버지의 뒷모습을 생각합니다. 세상의 길목에 빈 병처럼 쓸쓸히 놓일지언정, 그들이 거쳐 온 자리마다 남은 온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세월을 품고 또다시 아버지가 된 우리들 가슴에 깊은 위로가 깃들기를 바랍니다.